2008년 05월 01일
[HMS VICTORY]
Pride of Royal Navy
First Rate Ship of the line
HMS(Her Majesty's Ship)-Victory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현역(?)함선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에게 묻는다.First Rate Ship of the line
HMS(Her Majesty's Ship)-Victory

우리 역사상 가장 기억 될 만한 배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사람에따라 판옥선,참수리 고속정부터 심지어는 한강 유람선이나 간첩선까지
다양한 대답이 나오겠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즉시,등에 철심을 박고 입에서 불을 뿜으며
적진을 아수라장으로 만드는 장면을 떠올리고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질문을 바꾸어,
"그 역사적 가치에 필적할만한 해상강국 영국의 함선은 무엇이라 생각하는가?"란다면?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은 침묵에 빠질 것이다.
(아니면 당신은 노링턴의 HMS 돈트리스나 동인도 함대를 떠올리고 있을지도..)

비운의 동인도 샌드위치 사업가 버켓
조선의 거북선에 준하는 대영제국의 역사적인 함선.
아직도 영국민-적어도 수병에겐-의 기억 속에서 넬슨과 함께 바다를 가르고 있는 전함.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을 찾기 위해,우린 잠깐 약 250년 전으로 시선을 돌린다.

영국이 지원하는 프로이센과,러시아 프랑스의 후원을 받은 오스트리아의 격돌-7년전쟁
(위,Battle of Kunersdorf)
(위,Battle of Kunersdorf)
오스트리아와의 전쟁이 한창 물이 올라있던 1758년.
소형 기동전함 생산에 여념이 없던 잉글랜드 동남부-채텀(chatham) 조선소에
신형 전함 건조용 건독(Dry dock)준비 지시가 떨어졌다.
당시만 하더라도 작업자 중에서 아직 계획의 윤곽조차 잡히지 않은 이 프로젝트에 대해
크게 신경을 쓰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그도 그럴것이 영국 해군의 입맛은 기동성이 높은
소형 함선을 선호하고 있었고,이미 얼마전 HMS Royal George가 취역했기에 조만간은 이런 대형
전함의 건조가 없을 것이였기 때문이다.
(당시 영국은 2척 이상의 1급 전함을 동시에 취역시키지 않았다)
그러나,모두의 예상을 뒤엎고 사건은 터졌다.
1759년 6월,모든 준비를 마치고 다음 작업을 기다리던 수석 조선공
에드워드 엘런 앞으로 영국 해군성의 프로젝트 초안이 도착했다.
계획서를 읽어 내려가던 그의 얼굴은 점점 흥분으로 가득찼다.
HMS Royal Goerge를 바탕으로 토마스 슬레이드에 의해 디자인된 함선
배수량 3500t,최소 100문의 대포(Gun)를 탑재하며 머스켓으로 무장한
800여명의 수병이 탑승하는 전함-
또 한 척의 신형 1급 전열함 건조 명령이 떨어진 것이다!

건조중인 HMS Victory
그리고 1759년 7월 23일.
Victory Dock이라 명명되는 채텀 조선소의 한 도크에
함선의 뼈대가 될 용골이 놓여졌다.
훗날 유럽 대륙을 정복하고,바다로 눈을 돌린 나폴레옹의 제해권 장악 의지를
좌절시킨 넬슨의 기함-18세기를 통틀어 10척밖에 건조되지 않은 1급 함선 중에서도
가장 성공적인 함선으로 평가받는 HMS VICTORY의 등장이였다.

전장 227피트,3단 포열 갑판을 가진 Victory는 2차대전의 저명한 전함들에
필적할만한 당대 전장 범선의 로망이였다.
(물론 수병의 대부분은 로망이 아닌 강제 징집대에게 끌려왔지만)
작업도중 전쟁이 종결됨으로서 뜻하지 않게 6년이라는 건조기간(1759~65)을
잡아먹은 이 괴물은 그에 못지않은 목재와 예산을 먹어 치웠는데,
100에이커에 해당하는 6000그루의 나무와,6만 3176파운드(현시가 5천만 파운드)에 달하는
건조비용은 가히 목조선 시대의 항공모함이라 할 만 했다.

바다의 무법자(?) 프리깃함도 1급 전열함 앞에선 병약 소녀에 불과했다.
물론 Victory의 화력은 그 건조 비용과 1급 함이라는 이름에 섭섭하지 않을 만큼 강력했다
1765년 건조 당시 이 함선은 정확히 100개의 대포(Gun)를 장착하고 있었다.
이 대포들은 3층의 포열갑판에 정렬되었는데,
하부 포열갑판(Lower gun deck)에 42 파운드 포 30문,
중앙 포열갑판(Middle gun deck)에 24 파운드 포 28문,

상부 포열갑판(Upper gun deck)에 12파운드 포 30문,

그리고 선수와 선미에 각각 6파운드 포 2문과 10문이 설치되었다.
(이 무장은 계속 바뀌었고,트라팔가 해전 당시 절정에 달했다)

그러나 막상 완성된 Victory는 7년 전쟁의 종결로 인해
마땅한 임무를 부여받지 못했고,함장만 바뀌어 가며 하릴없이
메드웨이(Medway)강가에 장장 13년동안 방치(?)되는 신세를 면치 못했다[..]

"젠장, 일거리를 줘!!"
하지만,이후 미국 독립전쟁에 프랑스가 개입하자 드디어 Victory는 닻을 올리고
연습게임에 들어갔고,얼마후 바다 건너 대륙 프랑스에서는 이 전함의 화려한 데뷔
를 위한 모종의 준비 작업이 시작되었다.

1789년 7월 14일,성난 혁명군이 바스티유 감옥을 습격했다.
4년뒤인 1793년 1월 21일,그들은 루이 16세의 목을 날렸다.
그리고 얼마후,"혁명 수출"의 기치 아래 코르시카의 한 청년이 이끄는 군대가
적대적 제국들을 차례로 붕괴시키며 유럽대륙을 집어 삼켰다.
드디어 역사의 무대에 프랑스의 위대한 지도자-보나파르트 나폴레옹이 등장한 것이다
1804년 프랑스 황제에 등극한 나폴레옹은 유럽 지도상에서
아직도 깃발이 내려오지 않은 두 국가-제정 러시아와 대영제국에게 총을 겨누었다.
그러나 그가 영국을 점령하기 위해선 넘어야할 장애물..바로 바다가 있었다.
바야흐로 양국은 22년간의 해군 전쟁기에 돌입하게 된 것이다.

긴장타라 섬나라 놈들,형이 간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마 이 전쟁을 "영국이 리드하는 일방적인 전투"로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러나,영국은 확실히 전통적인 해상 강국이였으나,Royal Navy에게 황제의 군대는
그렇게 만만한 상대가 아니였다.
프랑스군은 지상에서 그랬듯,바다에서도 총 2000여척의 함선,9만명의
수병과 베테랑 선장을 보유한 강력한 군대였다.
하지만,제해권을 두고 양국이 마지막으로 벌인 역사적인 혈전이 벌어졌을때,
프랑스는 이 결정적인 전투에서 패배하고 만다.
1805년 10월 21일.
넬슨 제독이 이끄는 27척의 영국 함대가 트라팔가르에 주둔해 있던
33척의 스페인&프랑스 연합 함대를 기습 공격했다.
이때 Victory의 나이 40세,영국 함대의 선봉이였다.

그대로 기다려라,미안하지만 아직 바다의 왕자는 우리다.
수적으로나 화력으로나 열세였던 넬슨은 기존의 범선 전술이였던 단종진을 채택하지 않았다
대신 그는 Victory를 선봉으로 한 돌격대로 하여금 연합함대의 중심을 끊고 90도로 선회하여
앞 뒤에서 적을 공략하는 새로운 전술을 구사했다.
곧,한쪽 사이드에만 포병을 배치한 연합 함대는 화력면에서 상대적 손실이 일어난 상태로
영국 해군에 의해 샌드위치가 될 판이였다.

멀리 일자로 늘어서 있는것이 연합 함대의 단종진이다.
영국군의 선봉,Victory가 적함대의 진열을 돌파하면서 본격적인 전투가 시작됬다.
물만난 고기마냥 전장을 휘저으며 돌격해가는 Victory의 뒤로 연합 함대의 진형이
무너지기 시작했고,그는 다시 잔챙이들(?)이 날려대는 포탄은 애교로 받아 넘기며 적의 기함을
찾아 다녔다.

"다 필요없고 대장 나와염 '-'..빨리"
그런데 이것은 무슨 운명의 장난이란 말인가(..뭔소리?)
어느 RPG게임이나 판타지에서나 나올법한 상황,때마침 적진을 난장판으로 만드는
이 악동들 앞에 드디어 무적함대의 후예이자 연합 함대의 최종병기
[Santissima Trinidad]-스페인 1급 전열함이 그 모습을 드러냈다.

Santissima-대포 136문,배수량 4900t,탑승 수병 1000명..걸리면 뼈도 못추린다.
"불렀어염 'ㅅ'?"
Santissima Trinidad...
필시 그 주위엔 연합 함대의 기함 Bucentaure가 있을 것이였다!
판단이 내려지자,더 기다릴 것도 없이 Victory는 선수를 돌려 맹렬히 달렸다.
과연 그곳에는 프랑스 사령관 빌너브(Villeneuve)의 Bucentaure와 7-8척의 호위함들이
떠 있었고,그들은 Victory를 발견하자 집중 사격을 개시했다.
Victory는 탄막을 뚫고 용감히 적장을 향해 쇄도했다.하지만,기함에 거의 다다랐을 무렵,
Bucentaure를 호위하던 Redoutable가 미끄러져 들어와 그의 앞을 막아섰고,두 함선은
서로 뒤엉켜 전투를 벌였다.

테메레르급(포 74문) 전열함 Redoutable과 Victory의 충돌
이야기의 흥이 깨지는 감이 없잖아 있지만,
안타깝게도 이 이후의 이야기는 읽는 이의 몫으로 남겨 둘 수 밖에 없다.
주인공인 Victory가 더이상 등장하지도 않을 뿐더러,더 진행했다간
넬슨의 트라팔가르 해전사가 되어버릴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그리고 다른 전투도 있지만,다 쓰기엔 너무 많아 제일 유명한 트라팔가르만 다뤘다)
-정 궁금하면 직접 찾아 보거나 흔히 영화에서
해적들이 전투를 벌일때 하던 것들을 상상하라!-
다만,저 전투 중에 Redoutable의 마스트에 있던 머스켓 총병에 의해
넬슨이 전사했다는 사실만 알아두자.
어쨌건,지루한 이 해전은 22척의 연합합대를 수장 시키고 단 1척도 잃지 않은
영국 해군의 압승으로 종결됬으며,제해권을 잃은 나폴레옹은 워털루 전투로 몰락
할 때 까지 "대륙 봉쇄"로 영국을 압박하게 된다.
(물론,저 이름뿐인 봉쇄에 대해 영국은 해상 봉쇄로 대응했다.)
실력을 유감없이 발휘하며 맹 활약을 펼친
Victory는 이후로도 여러 제독들의 기함으로서 바다를 누비며 맹활약했고,
1812년 11월 7일,드디어 모든 임무를 마치고 포츠머스에서 은퇴했다.
물론 은퇴했다고 해서 표적함으로 격침 됬다거나 땔감으로 전용된건 아니다
아직도 살아있는 이 노인을 만나고 싶다면 비행기를 타고 영국 포츠머스로 날아가라.
지금도 그 자리에서 관광업에 종사하고 있는 victory가 맞아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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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MS VICTORY 제원
배수량:3500t 적재능력:2142t
전장:69.3m 전폭:15.8m
흘수:8.8m 선창의 깊이:6.6m
추진수단:돛(5440 m²) 속도:8~9노트
승무원:850
무장:(위에서 제작 당시의 스펙은 언급했으므로)
1805년 트라팔가르 해전 당시
32파운드 포 30문(하단)
24파운드 포 28문(중단)
12파운드 포 30문(상단)
12파운드 포 12문(선미)
12파운드 포 2문/68파운드 포 2문(선미)
도합 104문 일반 수병 무장:머스켓
# by | 2008/05/01 15:46 | 전함[戰艦] | 트랙백 | 덧글(2)






